천문연 나노위성 '도요샛' 이야기. (2) 도요샛, 나의 님
천문연 나노위성 '도요샛' 이야기. (2) 도요샛, 나의 님
  • 이재진 박사
  • 승인 2024.05.25 00:40
  • 조회수 141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최초로 편대비행 하며 우주날씨를 관측하는 나노위성 ‘도요샛’이 1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해 5월 25일 누리호 3차 발사에 실려 우주로 간 이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도 무사히 관측 수행 중이랍니다. 1주년을 기념해 도요샛을 탄생시킨 연구책임자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이전 이야기:

천문연 나노위성 '도요샛' 이야기. (1) '도요샛', 생일 축하해!

 

도요샛, 나의 님

‘님만 님이 아니라 길운 것은 다 님이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서시, ‘군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어쩌면 나의 님은 도요샛인지도 모르겠다. 

 

도요샛은 하루 14바퀴 지구를 도는데, 새벽 5시경, 그리고 저녁 7시경 짧게 마주한다. 길어야 7분, 이 짧은 만남을 위해 도요샛의 상태를 분석하고 명령을 준비한 뒤 운용실에 앉으면, 3기의 위성이 새벽에는 뜨거운 남도를 지나, 저녁에는 넓은 시베리아와 만주를 거쳐 일렬로 대전 지상국에 도달한다. 안테나가 돌아가고, 모니터에 위성 신호가 나타나면 분주하게 계획된 명령을 보낸다. 그러면 위성은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다음 교신 시간을 또 기다린다. 이렇게 위성 운용이 늘 한결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도요샛은 위성이 작기도 하고, 저비용으로 개발된 위성이다 보니 매 순간 조마조마하다. 3기 위성 중 1호기, 가람이는 처음부터 전력계가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아서 위성이 꺼졌다 켜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남은 위성은 2호기 나래와 4호기 라온 뿐이다. 

도요샛 관제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도요샛 관제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도요샛이 발사되고 약 3달 정도 지났을 때다. 태양 흑점 폭발과 함께 많은 방사선이 우주로 쏟아져 나왔다. 주로 양성자로 이루어진 태양 방사선은 위성의 전자 소자를 파괴하거나 성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큰 대형 위성도 태양 방사선에 의해 동작을 멈춘 사례가 여러 건 보고되었다. 이번 방사선 폭풍은 세기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지속 시간이 길었다. 보통 하루면 끝나는 폭풍이 3일 동안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4호기 라온이, 그리고 얼마 후 2호기 나래가 교신에 실패하였다. 응답하라는 명령을 며칠 째 보냈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영화 ‘더 문’이 상영되었는데, 영화에서도 태양 폭발에 의해 달 탐사선이 고장을 일으키는 내용이 나온다. 우주 날씨를 관측하기 위한 위성이 우주 날씨에 발목을 잡히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도요샛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는 것일까 생각하던 순간 다시 위성 신호가 수신되었다. 컴퓨터 화면으로 떨어지는 숫자들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눈물까지 핑 돈다. 도요샛은 일정한 시간 동안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리셋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무려 5년 동안 위성을 설계하고 수많은 시험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위성이 지상에 있을 때와 우주에 있을 때는 천지 차이다. 지상에서 그렇게 쉽게 수행되던 명령이 우주에서는 엉뚱하게 작동하기 일쑤다. 위성을 볼 수도 없으니, 제한된 정보로 추리가 시작된다. 마치 탐정이 된 듯 여러 가정을 세우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그러면서 위성에 대해 매일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면 위성은 어느새 그냥 기계 덩어리가 아닌 나의 님이 된다.

 

지난 1년 동안 꼭 가야하는 출장이 아니면, 매일 새벽 그리고 저녁 교신을 함께 했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매일 새벽에 마주하는 청소 노동자께서 “피곤해서 어떻게 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글쎄, 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님을 만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

천문연 나노위성 '도요샛' 이야기. (3)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천문연 나노위성 '도요샛' 이야기. (4) 끝나지 않은 도전


필자 소개: 이재진 박사(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장, 도요샛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

중형과학로켓(1998), 우리별 3호(1999), 아리랑위성 1호(1999), 과학기술위성 1호(2003) 등 다수의 국내 인공위성 프로젝트에 참여해 우주날씨 관측 탑재체 개발. 한국천문연구원에 2007년 입사 후 우주날씨 관측 장비 개발과 모델을 개발하며 2017년부터 도요샛 개발을 이끌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재밌습니다 2024-05-27 17:27:50
물가에 내놓은 애들 걱정하는 부모 같아요 ㅋㅋ

  • 충청남도 보령시 큰오랏3길
  • 법인명 : 이웃집과학자 주식회사
  • 제호 : 이웃집과학자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병진
  • 등록번호 : 보령 바 00002
  • 등록일 : 2016-02-12
  • 발행일 : 2016-02-12
  • 발행인 : 김정환
  • 편집인 : 정병진
  • 이웃집과학자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6-2024 이웃집과학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ontact@scientist.town
ND소프트